가격 그대로 용량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이어
서비스·제품 쪼개 파는 ‘언번들링’ 보편화 전망
이코노미스트 “공항 셔틀에도 요금 부과할 듯”
13일 정부는 내년 초부터 제조사가 가공식품 등의 용량을 줄이면 포장지에 반드시 용량 변경 사실을 표기하도록 의무화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고물가에 기업들이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두고 용량을 줄이거나 질을 떨어뜨리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이 확산하자 내놓은 대책이다. 이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눈에 띄지 않게 비용을 올리는 스텔스플레이션(Stealthflation)이 2024년에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정부 대책의 뼈대는 가격은 그대로 두고 용량을 줄이거나(슈링크플레이션), 제품의 질을 떨어뜨리는(스킴플레이션) 경우에 소비자에게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마트나 온라인 등에서 판매되는 식품과 세제·표백제 등 생활화학제품은 제조사가 용량을 줄이면 포장지에 변경 전 용량과 변경 후 용량을 모두 써놓아야 한다. 오렌지 주스의 과즙이나 과육 등 제품에 포함된 원재료를 줄이는 경우에도 소비자에게 공개해야 한다.
고물가가 심화하면서 슈링크플레이션이나 스킴플레이션은 2024년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레 나온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1월 발간한 ‘2024 세계 전망’에서 “내년에 ‘스텔스플레이션(Stealthflation)’ 재앙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스텔스플레이션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기처럼 소비자물가지수나 생산자물가지수에 잡히지 않는 방식의 물가 상승이 일어나는 현상을 뜻한다. 결국 내년에 소비자 부담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이코노미스트는 스텔스플레이션의 사례로 호텔·항공사에서 체크인 수수료를 받거나 식당에서 테이크아웃을 하는 고객에게 포장 수수료를 청구하는 경우를 꼽았다.
실제로 지난 8월 영국 비비시(BBC)는 한 노부부가 프랑스 여행을 앞두고 체크인하며 110파운드(약 18만원)를 낸 사례를 보도했다. 80대 노부부는 프랑스 여행을 위해 온라인에서 체크인을 하고 항공 티켓을 출력했다. 그러나 부부는 공항에 가서 출국편 대신 귀국편을 체크인했다는 걸 깨달았다. 현장에서 출국편 체크인을 하려 하자 돌아온 건 110파운드의 추가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비비시는 부부의 딸이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SNS) 올렸고, 글이 1300만회 이상 조회되면서 화제가 됐다고 전했다. 일부 나라에서 맥도날드가 공짜로 제공하던 케첩·소스에 추가 요금을 받는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베엠베(BMW)는 일부 차량에 ‘엉따’(엉덩이를 따뜻하게 해주는)라 불리는 열선시트를 이용하려면 월 18달러(2만3000원)를 내라는 구독 서비스 정책을 발표했다가 소비자 반발에 철회했다. 현재 세계 자동차 업체들은 차량의 성능을 높이는데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구독서비스 도입에 속속 나서고 있다. 저가항공사(LCC)에선 이제 보편적인 정책인 ‘언번들링’ 전략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언번들링은 서비스·제품을 쪼개서 파는 정책으로 저가항공사는 기내식, 좌석 선택, 담요 등을 이용하는데 추가 요금을 요구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이러한 현상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항공사들이 앞으로 비행기로 가는 셔틀버스 티켓을 판매하기 시작하거나, 화장실을 사용에 요금을 부과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24년 (소비자들이) 더 자주 분노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에너지·식량·원자재 등의 가격 상승으로 전 세계를 덮친 인플레이션 탓에 기업들은 스텔스플레이션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소비자의 부담이 증가하다 보니 한국을 비롯해 각국 정부는 최근 대응에 나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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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