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GETTY IMAGES
현재 인류는 화산에서 나올 수 있는 최악의 영향 중 일부는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화산 폭발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와 관련된 위험 요소 및 윤리적 딜레마를 리처드 피셔가 정리했다.
1986년 어느 날 밤, 카메룬에 있는 한 화산 호수에서 CO2 가스 구름이 피어올랐다. CO2 가스는 경사면을 타고 내려와 농장과 건물로 들어갔다. 이 일로 17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고, 3000여 마리 가축이 질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니오스 호수에서 벌어진 이 재난은 ‘림닉 분출(호수 분출)’이라고 한다. 너무나 끔찍했던 재난 이후 재발을 막기 위해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머리를 맞댔다. 3년 후 그들은 정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호스를 호수 바닥으로 집어 넣어 치명적인 가스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후 호스는 보다 더 큰 파이프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가스가 유출될 위험이 있었지만, 결국 이 방법은 성공했다. 이후로 CO2 가스 수치가 성공적으로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니오스 호수 사례는 화산에 ‘지구공학적’으로 대응해, 생명을 구하고 재앙을 막아낸 사례로 꼽힌다. 사실 지구공학적 화산 대응은 꽤 오랫동안 다양한 제안과 시도가 있었다. 예를 들어 최근 화산 폭발이 시작된 아이슬란드 레이캬네스 반도에선 당국이 암석 더미를 이용해 용암이 흐르는 방향을 원하는 대로 유도하는 시도를 했다. 1970년대에는 해수를 이용해 헤이마에이 화산 분출물을 식히려 한 적도 있다. 하와이 등지에서는 화산을 통제하기 위해 비행기에서 폭탄을 투하(이 방법은 결국 실패했다)하기도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마그마가 모여 있는 곳으로 관을 뚫어 가스를 제거하거나 대기 중 유황 배출을 조절하는 기술도 완성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에는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게 아니다. 위험이 공존하며, 철학자가 머리를 긁적일 만한 도덕적 딜레마도 따른다. 버밍엄 대학의 화산학자 마이클 캐시디와 동료들은 최근 논문에서 지구공학적 화산 대응의 윤리 문제를 심도있게 다뤘다. 이들이 다룬 주요 질문은 ‘우리가 화산의 그렇게 많은 부분을 통제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통제해야 하느냐’였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이탈리아 에트나산에서 소방관들이 물과 기계로 용암의 방향을 바꾸려 하고 있다
인간이 화산을 연구해 온 것은 적어도 100여 년 정도다. 하지만 그 성과에는 희비가 교차한다.
예를 들어 1919년 인도네시아 클루드산에서 ‘라하르’라는 화산 진흙류에 5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엔지니어들은 분화구에 터널을 뚫어 화산호에서 물을 뺐다. 그 덕에 1951년 화산이 다시 분출했을 때는 호수의 부피가 90%나 줄어 있었고, 라하르의 파괴력도 약해졌다.
그러나 클루드산 시추 작업은 예상치 못한 결과도 가져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호수가 예상과 달리 깊어진 것이다. 그래서 1966년 화산 분화 때는 양이 늘어난 라하르로 300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때로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화산 내 진입’이 일어나기도 했다. 최근 아이슬란드와 하와이, 케냐의 지열 시추 현장에서 실수로 마그마가 모여 있는 곳으로 구멍을 뚫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드릴이 녹아버리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이런 사건들로 인해 ‘화산 내부로 구멍을 뚫는 게 화산을 약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캐시디는 일반적으로 화산학자들이 자신의 분야에 지구공학을 도입하는 데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산불, 홍수, 눈사태 같은 자연재해는 과학을 접목해 많은 부분 통제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달리 화산을 막거나 폭격하거나 물을 빼내자는 아이디어는 훨씬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화산학자들은 지구공학적 화산 대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위험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 즉 ‘우리는 과학자이지 개입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존재하는 겁니다.”
화산학이 20세기 중반에 본격적인 과학 분야로 자리잡은 이래, 이 학문의 일반적인 원칙은 예방과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국 지질조사국 웹사이트만 봐도, 옐로스톤 화산의 분화를 막기 위해 구멍을 뚫자는 의견에 대해 “마그마 시스템에 압력을 가하면 분화 가능성을 높이는 등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반박 의견이 올라와 있다. 물론 어떻게 그런 부정적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공학저 화산 대응이 안전하게 수행될 수만 있다면, 많은 생명을 구할 것은 분명하다. 현재 옐로스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러 곳에 슈퍼화산(폭발할 때 분출하는 마그마와 화산재가 1000㎦ 이상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화산)이 있다. 최근 이탈리아 나폴리만 봐도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집과 사업장 아래에서 거대한 화산 캄피 플레그레이가 꿈틀대고 있다. 그리고 지질학자들은 폭발이 임박했다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뉴질랜드 역시 아래 동영상처럼 슈퍼화산을 갖고 있다.
지구공학적 화산 대응은 화산과 관련된 보다 광범위한 재앙도 완화할 수 있다. 일부 화산은 경제적, 기후학적 측면에서 전 지구를 위협한다. 2010년 아이슬란드의 아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이 폭발해 유럽 전역에 수천 대의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그 피해액은 수십억 달러에 달했다. 말라카 해협과 같은 곳에서 화산이 폭발하면 선박 운항이 중단돼 전 세계 무역이 마비될 수 있다.
화산 폭발은 기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화산이 대기에 추가하는 CO2는 인간이 배출하는 CO2보다 훨씬 적다. 그러나 가끔씩 일어나는 대규모 분화는 태양을 차단하는 화산재와 에어로졸을 방출해 지구를 냉각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1816년 북반구에선 수천 마일 떨어진 탐보라산에서 분출된 입자로 인해 대기가 냉각돼 ‘여름이 없는 해’가 나타났다.
지질학에서 파악한 가장 큰 화산의 규모를 고려한다면, 전 세계가 받는 영향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실존적 위험을 연구하는 라라 마니와 캐시디는 과거 연구에서 고도로 연결된 사회에서 화산 폭발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이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지구가 3도 정도 냉각되는 것, 농업의 막대한 손실, 공급망 붕괴, 가뭄이나 몬순과 같은 극심한 기상 조건 등이 발생할 수 있다. 화산 중에는 그 폭발이 모든 지구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화산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캐시디와 마니, 옥스퍼드 대학 철학자 앤더스 샌드버그가 지구공학적 화산 대응의 가능성과 윤리에 대해 더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캐시디와 동료들은 지구공학적 대응을 모든 화산에 즉각 도입하자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불확실성과 위험이 너무 크고 거버넌스 구조가 부재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도입을 정당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과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복잡하고 강력한 존재를 다룰 때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화산에 구멍을 뚫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구멍을 조심스럽게 뚫으면 원칙적으로 가스 압력을 낮추고 폭발의 폭발력을 줄일 수 있다. 지질학자들이 아이슬란드, 하와이, 아프리카에서 마그마가 모여 있는 공간을 실수로 뚫었을 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 그리고 이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결과가 모든 화산에 적용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캐시디는 “폭발성 물질이 훨씬 많은 섭입대(두 개의 다른 판이 부딪힐 때 한 개가 구부러지며 다른 하나의 밑으로 침강하는 지역) 화산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습니다.”
캐시디와 동료들은 두 가지를 주장한다. 첫째, 마그마가 모인 곳으로 구멍을 뚫는 것 같은 예방 노력의 타당성과 안전성에 대한 더 많이 (신중한) 연구를 하고 배출된 유황에 대한 대기 정화 같은 또 다른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지구공학적 화산 대응을 잠정적 대안으로 따져보는 방식으로 연구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 즉, 무조건 낙관적 입장이나 무모한 시도가 아니라 적절한 거버넌스의 통제를 받아 가능성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개입으로 생길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지구공학적 화산 대응은 잠재적 승자와 패자를 정해야 할 수도 있다. 용암의 흐름을 돌리기 위해 장벽을 세우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조치만 봐도, 다섯 명의 집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의 집을 파괴하는 쪽으로 용암을 보낼 것인지와 같은 ‘트롤리 딜레마’에 부딪힌다. 1973년 아이슬란드 헤이마에이의 해수 냉각 시도도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항구를 구하기 위해 한 곳에서 바닷물을 식히자 다른 곳의 압력이 높아졌다.
법적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개입주의 입장을 가진 당국이 공익을 위해 실수로 건물을 파괴한 경우, 보상을 해야 할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화산 폭발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탈리아 라퀼라 지진 발생 후 6명의 지질학자가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이 지진의 규모를 예측하지 못하자 당국은 이들이 거짓말로 사람들을 안심시켰다고 비난했다(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인류는 적어도 100여 년간 화산을 탐구해 왔다
전 지구적 차원의 윤리적 딜레마를 보자. 수백만 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 재앙을 막을 수만 있다면, 화산과 인접한 지역의 주민 수백 수천 명의 목숨을 실수의 가능성이 있는 지구공학에 맡겨도 되는 것일까? 문화적으로 민감한 요소가 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일부 화산은 근처에 사는 주민들에겐 종교적 의미를 갖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지구공학적으로 화산을 다루는 게 어려울 수 있다.
오래된 철학적 난제도 있다. “자연에 간섭하는 것은 언제나 잘못이며,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와 같은 의무론적 관점과 “가장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을 해야 한다”와 같은 결과론적 계산 사이에서, 우리가 언제 어떤 것을 적용해야 하는지는 늘 쉽지 않은 문제다. 명확한 답은 없다. 다만 캐시디와 동료들이 지적했듯, 현재 많은 화산학자들이 별다른 논쟁 없이 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1980년대 카메룬의 니오스 호수 재난 이후의 대처는 지구공학적 화산 대응도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고 실제로 생명을 구할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이 사례가 인상적인 이유는 자연에 간섭하는 미래형 공상과학 기술이 아니라, 정원을 관리할 때 쓰는 호스로 가스를 빼냈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지구공학이 그렇게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화산 폭발이 임박했다면, 우리는 모든 선택지를 다 따져봐야 할 것이다.